“우리는 모두 조금씩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때로는 비극이 삶의 나침반이 된다. 아버지의 죽음마저도.
‘테베랜드’는 존속 살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마르틴’과 그의 사건을 작품으로 각색하는 극작가 ‘S’, ‘마르틴’을 대신해 무대에 오를 배우 ‘페데리코’의 기묘한 만남을 다룬다. 평행선의 이들이 서로로 하여금 치유받고, 사유를 확장하며, 마침내 공명하기까지.
교도소 농구장 케이지 사이로 ‘마르틴’과 ‘S’는 데면데면한 첫 만남을 갖는다. ‘마르틴’의 댓 발 나온 입과 주눅 든 어깨에서 알 수 있듯 인터뷰가 내키지 않는다. 지각은 고사하고 ‘S’의 속셈에 상처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자신의 밑바닥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수치스럽다.
‘S’는 ‘마르틴’의 애착 스포츠, 농구를 알은체한 끝에 말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의심과 경계는 쉬지 않으면서. 검붉은 현장 사진이 모니터에 띄워지자 무거운 공기가 장내를 짓누른다. 일시의 경멸을 포착한 ‘마르틴’은 날카롭게 쏘아붙이지만, 유일한 관계마저 망칠 수 없어 용서를 구한다.
그날의 생생한 육두문자와 무참한 몸짓이 날아와 박힌다. ‘S’가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다. 사랑의 부재와 학대에서 비롯한 스물한 번의 포크질은 무자비하면서도 마땅하다. 오이디푸스, 프로이트, 모차르트, 도스토옙스키의 비극들만 하더라도 윤리적 잣대를 함부로 고집할 수 없으리라.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마르틴의 영혼은 종종 발작을 일으킨다. 하지만 더는 외롭거나 아프지 않다. 약속한 5시가 아니더라도 언제고 얼마고 기다릴 수 있다. 갑갑한 철창에서, 막막한 고독에서 꺼내줄 벗이 생겼기에. 공연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고 ‘마르틴’과 ‘S’는 나중을 기약한다. 보다 완전해진 ‘테베랜드’에서의 재회를.
1평 남짓의 철창은 문을 여닫으며 농구장에서 무대로, 무대에서 연습실로 둔갑한다. 이주승의 짙은 페이소스는 캠코더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세밀하게 송출된다. 치기 어린 눈초리, 투박한 걸음걸이, 호기로운 드리블, 응어리진 난도질, 파들거리는 떨림은 과연 스톡홀름 증후군이 당연할 연기다.
극은 쿼터, 하프타임(휴식시간), 연장전을 가지며 실제 경기처럼 진행된다. 인터미션 전, 김남희가 버저 비터를 울린다. 꼬박 나열된 농구 용어 리스트를 신들린 독백으로 캐스팅을 납득시키고 만다. 여기에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그의 내레이션은 회전을 돌게 하는 킬링 포인트가 되겠다.
재연으로 돌아온 ‘테베랜드’는 쿼드(16가지 버전의 페어)로 연출해 곱씹는 맛도 배가됐다. ‘S’ 역의 이석준, 정희태, 길은성, 김남희는 다채로운 무게감을 선사, ‘마르틴’-‘페데리코’ 역의 이주승, 손우현, 정택운, 강승호는 영리하게 2인분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진주 기자 [email protected]